2013.07.18

맑음. 배우 박영수의 분위기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이 말을 골라야겠다. <쓰릴 미> 연습실에서 어딘지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는 작품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처럼 선한 눈을 빛냈다. 그 맑은 기운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고 싶어 연이어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다만 '뮤지컬의 신'을 꿈꾸는 그가 무대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득 품고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잘 알 수 있었다. 올해 <아르센 루팡>과 <윤동주, 달을 쏘다>를 거쳐 다시금 <쓰릴 미>로 또렷이 이름을 각인시킬 그의 무대를, 다 풀지 못한 궁금증을 품고 기다려본다.

<쓰릴 미>를 연습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입이 마르는 게 제일 힘들어요(웃음). 'Roadster'가 나올 때 말고는 나가서 물 마실 시간이 없잖아요. 한 시간 반 동안 런을 돌다 보니까 중간에 집중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다시 집중하기도 너무 괴롭고.그리고 얼마 전에 용인에서 10대 살인사건이 일어났잖아요. 뉴스를 보면서 이해가 안 됐거든요. <쓰릴 미> 사건도 당시에 누가 이해를 했겠어요. 그 말도 안 되는 걸 표현하려니까 힘든 것 같아요.

네이슨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이해하고 계세요?

사건의 진행을 보면 네이슨은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서 그 순간순간에 굉장히 열심이거든요. 마지막 대사 중에 있잖아요.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와 함께 있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그게 네이슨의 마음인 것 같아요. 순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을 만큼 눈에 뭔가 씐 거죠.아까 일본 조연출님이 네이슨이 리처드의 반응을 보며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정말 사이코패스가 될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거든요. 순간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리처드의 반응에 제가 계속 흥분을 하는 거라면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변태새끼'일지도 모른다는(웃음)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연출님이 바라는 방향인지 모르겠어요.

네이슨이 사건현장에 안경을 떨어뜨리는 건요?

안경은 정말 일부러 떨어뜨린 거죠. 리처드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나를 버리고 1년 동안 다른 생활을 했잖아요. 거기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 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가 다시 배신할 거라는 걸 예감하거든요. 대사에도 '넌 날 배신할거야. 난 너가 원하는 대로 해도 넌 내가 원하는 대로 절대 하지 않을걸'이란 말이 있어요. 작은 사건들은 계약서에 의해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살인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함께 할 때는 그가 나를 또 배신할 가능성이 있으니 안경이란 장치를 버려둔 거죠. 감옥에 가려는 생각은 절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후에 감옥에서 34년을 보냈잖아요. 정말 긴 시간인데 리처드에 대한 마음이 변하진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무대에) 굉장히 무덤덤하게 들어온다고 생각했어요. 가석방 심의가 벌써 일곱 번째니까 이제 조금은 초연해진 거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네이슨은 초반에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말들을 해요. '빨리 판결을 해주십시오. 전 또 할게 있습니다'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거든요. 그러다 천천히 (과거)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는 거죠.그리고 맨 끝에선 이 친구랑 감옥에서라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행복감이 (다시 현재로 돌아오며) 회한으로 확 전환된다고 생각해요. 희열, 따뜻함이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의 한 자락으로 바뀌는 거에요. 후회보다는 가슴 아픈 기억 같아요. 평생 잊지 못할.

연습을 하지 않을 때도 맡은 역할에 몰입해계세요?

그러려고 해요. 그러지 않으면 한 시간 반 동안 집중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근데 저희 팀 분위기가 좋아서 장난 치게 되는데(웃음) 장난을 치면서도 계속 생각을 하게 돼요. <아르센 루팡>에서 레오를 연기할 때는 냉동 삼겹살을 사서 칼로 찔러봤거든요. 사람을 죽이는 인물이니까 그 질감을 알아보려고요. 이번엔 무슨 생각을 하나면, 연습실 안에 있는 사람을 한 명씩 (상상 속에서) 죽여봐요. 어떻게 하면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고.

자신과 네이슨의 닮은 점을 꼽는다면.

제가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점이 있어요. 주변도 잘 안 돌아보고. 지금도 <쓰릴 미>에 정말 빠져있거든요. 정말 저희 집 강아지 밥 챙겨주는 것(웃음) 말고는 저의 모든 사생활이 <쓰릴 미>에 맞춰져 있어요. 다른 건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자기 전까지 (대본을) 보고 일어나면 또 계속 생각하고. 네이슨이 뭔가 하나에 빠져서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를 맡은 임병근 씨랑 서울예술단 동기잖아요. 키스신 장면에서 어색하진 않나요?

병근이랑은 예전에 서울예술단에서 연습할 때도 같이 <쓰릴 미>를 하게 되면 어떨까? 라고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병근이가 리처드를, 내가 네이슨을 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했는데 그 키스씬 때문에 못 할 것 같은 거에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별 다른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 병근이가 말을 안 하고 갑자기 해서 깜짝 놀랐어요. 리허설 중인데 저도 모르게 (입술을) 떼 버렸어요. 그리고 나서 병근이가 '행복해?'라는 대사를 하는데…어휴(웃음). 예전엔 키스를 굉장히 진하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아직 (가볍게) 했는데, 상당히 입술이 말랑말랑 하더라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