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2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고종 役유약하지만 뒤에 뜻을 감추고 있는 박영수만의 고종"역사도 시선이 달라…현시대 해석 중 하나일 뿐"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한 배우가 한 역할을 이렇게 오래, 자주 한 적이 있었나 싶다. 비록 두 작품으로 나누어 졌지만 박영수는 벌써 6번째 고종 역할을 만났다. 특유의 목소리, 번뜩이는 눈동자, 유려한 몸짓 등으로 고종은 박영수의 ‘시그니처’가 됐다. 그런 그가 말하는 고종은 어떤 인물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이 인터뷰는 ‘곤 투모로우’의 박영수가 극장에서 들려준 ‘박영수 고종의 기록’이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이하 잃어버린 얼굴)와 ‘곤 투모로우’에서 10년 넘게 ‘고종’을 맡아 온 박영수는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며 고종 캐릭터 구축에 대해 설명했다. ‘잃어버린 얼굴’은 세 시간짜리 연극 대본에서 시작됐다. 힘없고 유약한 모습의 고종은 이지나 연출과 박영수를 만나며 변해갔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힘도 못써보고, 꿈도 펼치지 못한 인물로 남았어요. 하지만 이 분의 뜻이 있었으리라 생각했고 이 인물이 ‘무슨 일’을 했나 찾아봤어요. 신문물을 들여오려고 했고, 전기열차나 우정국을 만든 것도 고종의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명성황후나 흥선대원군, 김옥균 등 큰 인물이 많아서 업적이 가려진 거죠. 실제로도 독립단 후원을 하셨고, 독립에 뜻이 있었지만 뒤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박영수가 그리는 고종은 어딘가 비틀어진 인물처럼 보인다. “고종은 사실 왕이 될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철종과는 엄청 먼 친척 관계였는데, 거의 남이었죠. 흥선대원군의 계획 하에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되니 혼란을 많이 겪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꼬여서 자라나는 나무처럼 올곧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흥선대원군이 만들어가는 나라가 맞지 않았을 것이고, 준비하는 과정에 김옥균, 명성황후 등이 있었을 것 같아요.”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한 인물을 계속해서 맡아온 고종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막힘없이 나왔다. 박영수는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했다”며 “하지만 많은 영상과 책, 역사학자들도 해석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오히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선했다, 악했다라는 정의가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공연이 올라오는 것도 정말 심한 왜곡이 아니라면 현시대 해석 중 하나일 뿐”이라며 처음 실존 인물을 연기했을 때의 불안감은 덜어버리고, 초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실제로 이번 ‘곤 투모로우’에서는 홍종우라는 인물 대신 한정훈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데려오면서 표현의 여유를 넓혀갔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얼굴’과 ‘곤 투모로우’의 고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박영수는 “같은 인물로 봐도 된다”고 답하며 “맞닿은 상황이 다를 뿐이다”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얼굴’에서의 고종은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힘에 의해 인물이 꼬여가는 과정이 보인다면 김옥균은 잠깐 나온다. ‘곤 투모로우’에서는 김옥균과의 대립이 확실히 보이고 정훈과의 관계들이 뻗어져 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크게 보면 같은 과정이지만 보이는 장면이 다른 거다. 그래서 더 재밌는 것 같다”며 “이지나 연출님이 ‘잃어버린 얼굴’, ‘곤 투모로우’의 뒷이야기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고종은 거기에도 존재하는 거다. 나라가 넘어가는 순간이나 ‘엄상궁’ 역할이 많이 축소돼 있는데 이를 조명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곤 투모로우’의 끝부분과도 연결이 될테고, 우리는 결과를 다 알기 때문에 재밌을 것 같다”며 ‘고종’ 트릴로지 시리즈를 상상하기도 했다.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뮤지컬 '곤 투모로우' 박영수. 사진=김태윤 기자

‘곤 투모로우’의 고종이 가진 카드는 김옥균이었다. 박영수는 김옥균에 대해 “고종의 수족이자 또 다른 꿈”이라며 극적인 요소로 김옥균에 대한 마음이 애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극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종이 김옥균에 대한 배신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공포, 두려움, 배신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 같죠. 실제로 혁명의 역사를 봐도 혁명에 실패하면 혁명가가 참수를 당하고, 혁명이 성공했다면 왕이 참수되듯이 김옥균도 명분을 이어가려면 죽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재연에 추가된 대사인 ‘오롯이 좋은 건 김옥균뿐이었는데’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기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반증하는 대사다. 김옥균을 통해 못 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음료수를 쏟기 직전에 한 생각은 깊게 기억에 남는 것처럼 그 상황이 계속 생각이 날 것이고, 그래서 김옥균을 떠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잃어버린 얼굴’에서 가져온 “내 마음이라도 가져가라”는 대사가 딱 고종을 표현하는 것 같다며 “참 애매한 말이다. 허락한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라 고종을 나타내는 것 같아 대사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인터뷰①]박영수 “’잃어버린 얼굴’, ‘곤 투모로우’ 잇는 고종 시리즈 생기길”